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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성진 기자
  • 입력 2019.04.05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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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아래 글은 2016년8월31일부터 2016년9월5일까지 9부로 연재된 "삼일신고는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관련된 내용입니다.] 


---------------------------아    래------------------------------


* 사진 설명 : 경북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 권오설(權五卨, 1897~1930) 선생의 유품 『삼일신고』 * 사진 출처 : 경상북도독립운동 기념관


「삼일신고는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1)~(9)」는 잘못된 글이다. 위서(僞書) 또는 위서 논란이 있는 자료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글을 쓴 결과였다. Hapkido계 원로의 생각과 말이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달라서 이를 지적했던 것인데, 돌아보니 경솔한 행동이었다.


(1)편에 언급한 것처럼 「삼일신고」가 위서 논란이 있는 경전이라는 사실은 알았다. 하지만 제목과 본문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글을 쓰던 당시에 나는 「삼일신고」의 진정성을 신뢰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과 무관하게 역사학계에서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의 진위를 검증한 자료도 함께 모으고 있었는데, 이때는 기존 입장을 바꿀 만큼 확실한 것을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설령 「삼일신고」가 위서라 하더라도 담고 있는 내용은 소개할만하지 않은가’라는 생각마저 가지고 있었다.


이 안일한 생각이 잘못이었다. 지난 2년간 추가로 자료를 수집하면서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누가 어느 시기에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으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각 경전의 내력과 실제가 어떻게 다른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처음부터 글을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합기도신문의 성격과 맞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여기에서 모두 다루기는 어렵다. 다만, 오해나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 글의 주제였던 「삼일신고」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만 몇 가지 언급한다.


- 「삼일신고」는 대종교*가 창교할 때부터 핵심 경전으로 채택되어 지금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대종교에서는 「삼일신고」가 창교자 나철에게 최초 전래된 경위를 ‘1906년에 어느 노인으로부터 받았다’고 소개한다. 학계에서는 「삼일신고」를 나철(또는 나철이 중심이 된 창교 주역들)의 창작물로 이해한다. 포교와 교육 목적으로 새로 만든 경전에 종교적 신비감을 부여하는 최초의 작업은 여느 신흥 종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종교가 단군교와 분파되었다가 이후 단군교를 비롯한 민족종교 신도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유사역사학의 영향을 받아 「삼일신고」의 내력이 크게 윤색되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팩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는 ‘「삼일신고」가 대종교가 시작되기 전부터 존재하였으며, 어느 책에 존재가 기록되어 있었다. ‘「삼일신고」에는 어떠한 정신이 담겨 있다.’는 본문 내용은 무시하시기 바란다. 모두 잘못된 정보들이다. 한편, 여전히 「삼일신고」를 신뢰하며 해설이 궁금한 분이라면 본문을 그대로 참고하셔도 좋다. 내력의 진위와 상관없이 본문 해설은 현재 유통되는 것들 중에 가장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한 것을 선택해 옮겼기 때문이다.


* 1909년 1월 창교할 때의 이름은 단군교였고, 1910년 8월에 교명을 지금의 대종교로 개칭하였다(창교·교명 개칭 시기는 자료마다 양력, 음력 표기가 다른데, 여기서는 ‘대종교’에서 공개한 연혁 자료를 따름). 나철이 교명을 바꾼 이유는 창교 초기부터 교단에 친일인사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으며 이들이 교단 내분을 일으켰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책이나 문서의 형식이나 체제, 성립, 전래 따위에 관한 사실. 또는 그것을 기술한 것을 서지(書誌)라 하고, 서지 사항을 조작한 것을 위서라고 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삼일신고」도 위서에 해당한다. 「삼일신고」를 위서로 본다고 해서 「삼일신고」를 신봉하는 단체 안에서 이 경전이 차지하는 상징성, 권위, 의미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삼일신고」는 그저 대종교의 창교 정신과 목적에 맞게 창작되었고, 그에 맞게 쓰였을 뿐이다.


*** 단군교에서 대종교로 이름이 바뀔 때 창교 멤버 중 하나였던 정훈모는 이에 반발하며 기존 이름을 고수한 단군교로 분파하였다. 이후 대종교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총본사를 만주 지역으로 옮겼고, 정훈모의 단군교는 친일 인사를 대거 받아들여 국내에서 활동했다. 둘 다 일제로부터 탄압을 받았는데, 대종교는 만주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덕에 그나마 세력을 보전할 수 있었고, 단군교는 지속적으로 세가 약화되다가 1936년 7월 조선총독부의 명령에 따라 해산된다. 그 결과 단군교를 비롯해 해산된 민족종교 신자들이 대종교로 유입되었다. 만들어진 순서에 따라 「삼일신고」는 대종교, 「천부경」은 단군교, 「참전계경」은 태백교의 경전이었다. 대종교가 예전에는 서로 다른 단체에서 사용하던 세 경전을 ‘계시경전(啓示經典)’이라고 하며 현재의 근본 경전으로 삼게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 Hapkido 단체가 Hapkido의 시작을 최용술의 등장 이전으로 끌어올리려 하거나, 합기(合氣)의 원리를 「삼일신고」 같은 경전에서 찾던 경향이 근래에는 보이지 않는다(워낙 문제가 많아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폐기되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러한 경향이 살아있던 때에 작성된 Hapkido 자료와 지한재 선생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잘못된 정보를 작성·유포한 것에 커다란 책임감을 느낀다. 늦게라도 실책을 인지하고 바로잡게 되어 다행이다. 앞으로도 글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견되면 바로잡고, 경과를 있는 그대로 기록해 남기겠다고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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