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인열전 「우에시바 모리헤이」 - 제11편 장군도 던져버리다
대동류를 버리고 자기만의 무술로
우에시바가 “데구치 선생님과 함께 지옥으로 가겠군”'이라고 각오한 것은 퉁랴오 감옥 안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식사는 하루 한 끼, 개가 먹을 것 같은 더러운 그릇에 수수밥과 된장국 한 그릇. 그것을 먹어야하는데 수갑도 안 풀어주고 발에도 족쇄가 채워져 있어, 엎드려서 겨우 그릇에 담긴 수수밥을 한 입 넣어 수십 번을 씹어 겨우 삼키고, 다음에는 된장국 그릇 가장자리에 입을 대고 그걸 입술로 기울여 한 모금씩 마신다.
감옥에 끌려갈 때 짐은 물론이고 입고 있던 옷도 모두 벗겨져 오니사부로도 우에시바도 훈도시한 장만 걸친 알몸이었다.
용변을 보고 싶다고 호소하면 문을 열고 밖으로 내보냈지만, 뒤에서 총검을 들이댄 경비병이 따라붙었다. 그래서 용변을 보아도 엉덩이를 닦을 수도, 손을 씻을 수도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오니사부로 일행이 잡혀 있다는 사실이 일본 측에 알려지면서, 맛있는 도시락과 입을 옷을 보내왔지만, 경비병이 가로챘다고 한다.
“어차피 너희들은 내일 총살당할 테니 너희 물건과 옷은 우리가 미리 받아 두지. 도시락은 조금 나눠 주마.”
내 도시락인데 도둑놈이 오히려 생색을 내는 것이다. 이런 지옥 같은 감옥 생활은 열흘 동안 계속되었다.
열흘째 되던 날, 오니사부로와 우에시바는 감옥에서 끌려나와 수갑은 벗겨졌지만, 족쇄는 그대로인 채 연병장 같은 곳에 줄을 섰다.
“드디어 총살이다”
우에시바도 여기서 자신의 일생이 끝나는 줄 알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 측에서 제각각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7월 5일, 일행은 무사히 덩자툰의 일본 영사관으로 인도되었다. 이 사건은 오니사부로 일행의 몽고 독립군 거병 계획을 중국 관헌이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우에시바가 오니사부로를 호위해 일본으로 돌아온 것은 7월 25일이었다.
한동안 오사카에 머물며 오사카부 경찰 본부의 요청에 따라 대동류 합기술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1925년, 1926년경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술 수련을 했다.
그곳에서는 대동류를 버리고 우에시바가 창안한 검술, 창술도 가르쳤는데, 어느 날 야마모토 곤베 원수가 찾아와 창술 시합을 보았다.
우에시바의 전광석화 같은 창법은 오시마류나 호조인류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완전히 감탄한 야마모토는 “내가 후원자가 될 테니 마음껏 해보시오.”라며 시바시라카네사루마치에 있는 시마즈 저택의 집 한 칸을 빌려주었고, 그곳으로 옮겨 도장을 연 것이 1927년이다.
이곳에 다케시타 장군, 야마모토 에이스케 장군, 게조 해군 중령 등이 배우러 왔는데, 모두 연습할 때마다 수십 번씩 던져졌다고 한다. 게조 중령 같은 경우는 도장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죽도로 머리를 얻어맞기도 했다.
야마모토 곤베 원수는 고령이었지만 손녀딸을 입문시켜 우에시바 무술을 배우게 했다.
그때부터 합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맨손 무술을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아직 합기도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제10편 다시보기 : https://aikidonews.co.kr/archives/15063
제1편 돌아가기: https://aikidonews.co.kr/archives/147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