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인열전 「우에시바 모리헤이」 - 제10편 오니사부로와 함께 몽고로 탈출 파인타라에서 붙잡히다
1923년 11월 말, 당시 오사카에서 다이쇼일보라는 신문을 발행하고 그곳의 사장도 겸하고 있던 오니사부로가 아야베로 돌아와 “우에시바 씨, 당신에게 재앙이 닥쳤어요. 우리 함께 도망갑시다"라고 말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성왕님, 도대체 어디로 도망가시는 겁니까?”
“몽고입니다.”
몽고라니 뜻밖의 소리였다. 게다가 그것은 오
니사부로 측근인 마쓰무라와 나다라는 두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우에시바는 오니사부로의 호위 역할로 따라가면서 자신에게 닥친 재앙에서 벗어난다는 이야기다.
이 때의 오니사부로의 몽고행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어 간단하지 않지만, 짧게 줄여서 말하자면, 1924년 2월 13일 오니사부로는 마쓰무라 마스미와 단 둘이서 아야베를 빠져나갔다. 새벽 3시에 아야베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탔기 때문에 아무도 몰랐다.
기차가 가메오카에 도착하자 우에시바와 나다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 4명의 모습은 13일 밤 8시에 시모노세키에 나타나 관부연락선 '쇼케이마루'에 승선했다.
이튿날인 14일 아침 부산에 상륙해 펑톈으로 직행, 오후 6시 반에 펑톈 평안거리의 삼야상회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오니사부로는 우에시바에게 “당신에게 닥치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자”며 펑톈까지 왔지만, 그는 오사카에서 조만간 대본교에 2차 검거가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국외로 도주한 것이다.
그러나 '국외 도피'라고 부르는 것은 신문기자의 시각이며, 오니사부로가 「여러 종교를 통일하여 세계 대종교를 창설하라」 「그 성지는 몽고다」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나온 것이라고 마쓰무라에게 말했고, 마쓰무라는 이를 이루기 위한 조언자였다고 한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일본 정부가 불경죄니 치안유지법이니 하면서 대본교를 탄압하고 금지시키려 한다면, 오니사부로는 대본교 본부를 몽고로 옮겨 세계 인류의 구원에 나섬으로써 일본 정부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는 저항심에서 나온 행동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펑톈에 도착하자마자 오니사부로는 서북자치군 육군 중장 루잔쿠이(노점괴)라는 전 도적의 우두머리이자 당시 장쭤린(장작림)의 심복이었던 장군을 접견하고, 양자가 뜻을 같이하여 몽고 독립을 도모하게 된다.
몽고국이 독립하면 대본라마교라 칭하고 몽고 전역에 대본교의 교리를 전파하기로 했다.
3월 3일, 오니사부로 일행은 펑톈을 출발해 자동차로 카이위안(開原)에 도착, 그대로 창투(昌図)까지 가서 하룻밤을 묵었다.
3월 8일에는 타오난(洮南)에 도착. 26일에는 왕예마오(王爺廟)에 도착. 이후 공야부(公冶府)로 이동하여 루잔쿠이(노점괴)와 함께 200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독립의 깃발을 올리려던 중 상황이 바뀌어, 오니사부로는 파인타라에서 장쭤린(장작림)의 군대에게 붙잡혀 통랴오(通遼)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결국 데구치 오니사부로 선생님과 함께 지옥으로 가겠군” 우에시바도 함께 감옥에 갇혀 마지막 각오를 했다. 오니사부로와 우에시바는 모두 수갑과 족쇄를 차고 사형수 취급을 당했다.
제9편 다시보기: https://aikidonews.co.kr/archives/15023
제1편 돌아가기: https://aikidonews.co.kr/archives/147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