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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열전 「우에시바 모리헤이」 - 제8편 다케다 소카쿠에게 사사하여 대동류를 체득하다

  • 김의수 기자
  • 입력 2024.11.25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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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열전 「우에시바 모리헤이」 - 제8편 다케다 소카쿠에게 사사하여 대동류를 체득하다.


귀향 직전에 아버지가 타계




다케다 소카쿠(1898년, 39세)
다케다 소카쿠(1898년, 39세)


다케다 소카쿠를 만난 우에시바는 27세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그런데 다케다 소카쿠는 야마나시현 출신으로, 다케다 가문의 후예라고도 하고, 유신이라고 자칭했는데 대동류(大東流)라는 무예의 대가였다.


대동류는 아이즈 번(会津藩)의 비전무술이라고 하여, 메이지 시대에도 일반에 널리 보급되지 않고 대대로 자식에게만 전해지고 있었다. 다케다는 자신이 그 십몇 대째라며 말하기도 했다.


훨씬 나중에 도쿄에서 우에시바 제자인 모치즈키 미노루가 스승의 도장을 방문했을 때, 현관문을 열자마자 목검이 번뜩였다,


“어떤 놈이냐?"라고 큰 소리로 외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에 서 있던 사람은 다케다 소카쿠였다.


“마치 원수를 진 사람이 원수를 만난 듯한 그 때의 얼굴을 잊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찾아온 사람이 우에시바의 제자라는 걸 알게 된 후에 다케다 선생님이 보인 태도는 정말 기가 막혔어요.”


당시 다케다는 방랑을 하다가 도쿄에 도착해 우에시바의 도장에 들렀던 것이다. “막부 시절이 끝난 게 언젠데, 원수를 진 것도 아니면서 갑자기 들어온 사람을 목검으로 내리치는 것도 비상식적이다.”


만약 모치즈키가 합기도에 대한 소양이 없었다면 그때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모치즈키는 가시마신도류 3단, 유도 3단, 합기도 3단(모두 당시)이었는데, 그때는 “다리 하나를 부러뜨려 버릴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다케다가 자신의 스승인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스승이었고, 우에시바는 다케다가 뭐라고 하든 절대로 거역하지 않았다고 들었기 때문에, “스승님을 본받아 참았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시라타키 마을의 우에시바 집에 머무는 동안은, 다케다가 옷 입는 것, 이불을 펴고 개는것, 목욕하는 것까지 전부 우에시바가 직접 시중들어 모셨다.


우에시바는 다케다를 시중드는 틈틈이 대동류 무술을 배웠다. 대동류에는 검술과 체술 두 가지가 있는데, 검술은 전광석화 같은 거합과 반격기 같은 정묘한 기술이 주를 이루었고, 체술은 대부분 관절기였다.


우에시바는 날 때부터 숫자에 밝았기 때문에 대동류 체술의 관절기를 배우는 게 숫자만 봐도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훗날 합기도가 되는 것이다.





다케다 소카쿠의 대동류를 접한 우에시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무도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마치 하늘의 계시같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1918년, 우에시바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은 우에시바에게 하늘의 계시가 되어 떠날 때가 됐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 이제 떠나겠습니다. 제 집과 땅 모두 선생님께 드리겠습니다.”


다케다 앞에 엎드려 이별을 고하고, 빈털털이 맨몸으로 우에시바는 홋카이도를 떠났다.


고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당신 아버지 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 단바의 아야베에 데구치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만나 부탁하면 당신 아버지와 당신 모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요.”


우에시바는 곧장 아야베로 가서 데구치 오니사부로를 만나 아버지의 치유기도를 부탁하고 다나베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 우에시바 요로쿠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데구치 오니사부로
데구치 오니사부로


<이가라시 카즈오 추기>


다음 호의 사본이 없어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님의 전기에서 아래를 인용하여 다음 편으로 이어가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용) 귀향길 기차 안에서 종교단체 대본교의 실질적 교조였던 데구치 오니사부로의 소문을 들은 우에시바는 아버지 요로쿠의 치유기도를 부탁하기 위해 교토 아야베에 들렀는데, 오니사부로를 만나고 그 인물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 사이 요로쿠가 사망(향년 76세)하고, 물심양면의 후원자였던 아버지를 잃은 모리헤이는 1920년 37세 때 가족을 이끌고 아야베로 이주하여 대본교를 믿기 시작했다.


오니사부로는 이를 기뻐하며 모리헤이를 자신의 측근으로 삼고 “무술을 천직으로 삼으라”고 훈계했다.


모리헤이는 오니사부로 밑에서 각종 영법수행에 힘쓴다. 같은 해 가을 오니사부로의 권유로 자택에 '우에시바숙' 도장을 개설한다.



제9편 이어보기: https://aikidonews.co.kr/archives/15023
제7편 다시보기: https://aikidonews.co.kr/archives/14923
제1편 초음보기: https://aikidonews.co.kr/archives/14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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